2014. 8. 5. 16:37

지금으로부터 241년전인 1763년 영조와 왕세손(훗날 정조)간의 대화다.


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고 윤음(綸音)을 써서 조급하다는 것으로 뭇 신하들을 계칙하도록 명하였다. 이때 왕세손(王世孫)이 시좌(侍坐)하고 있었는데, 임금이 하문하기를,

한(漢)나라 소제(昭帝)는 어떠한 군주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현명한 군주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떻게 그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어떻게 그의 거짓을 분변하였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상관걸이 글을 올린 사람을 체포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 원인을 알았으니, 이것이 현명한 것이 됩니다.”
하자, 임금이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이것이 한나라 소제를 따라가기가 어려운 이유인 것이다.”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대정(大政)을 장차 행해야 하는데, 너는 균일하게 기용하고 싶은가, 치우치게 기용하고 싶은가?”
하니, 대답하기를,
“의당 균일하게 기용하고 싶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현명함과 무능함을 모르는데 어떻게 균일하게 기용할 수 있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현인(賢人)을 얻어서 전직(銓職)을 맡기면 현인을 모두 거용할 수 있는 것이므로 사람을 균일하게 기용할 수 있습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이 요점이 되는 방법이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네가 만일 굶주리는 사람을 보았다면 옥식(玉食)을 먹기가 편안하겠는가, 편안치 못하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비록 나의 밥을 덜어서 주더라도 준 뒤에야 먹겠습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나의 백성은 모두 조종(祖宗) 때의 적자(赤字)인 것이다. 뒷날 밥을 덜어주겠다는 마음을 잊지 말고 확충시켜 나가도록 하라.”
하고, 이어서 여러 신하들에게 하유하기를,
“경 등은 힘써 보좌하라. 사신(史臣)은 이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라.”
하였다. 영의정 신만(申晩)이 아뢰기를,
경자년15636) 이전에 절사(節使)가 연경(燕京)에 갈 적에는 당상관(堂上官)·당하관(堂下官)의 역관(譯官)이 모두 합쳐 20원(員)이었는데 그뒤 청학(淸學)과 몽학(蒙學)을 하는 사람 가운데 총민(聰敏)한 사람 및 삼등(三等)으로 급제한 사람을 특별히 선발하여 원수(元數) 이외에 5, 6원(員)을 더 내었습니다. 이제 《통문관지(通文館志)》에 기재된 대로 시행한다면 제반 명색(名色)을 절로 감손하여야 하는데 천문학(天文學)에 이르러서도 《통문관지》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중(彼中)의 역법(曆法)이 자주자주 바뀌는데 이제 감손하여 파기시킨다면 새로 고쳐진 역법을 장차 얻어올 길이 없게 됩니다. 화원(畵員)과 함께 1년을 사이하여 차송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3년에 한번씩 보내라.”
하였다.


241년전의 조선인들이 부러운 마음이 든다 ㅋㅋ

Posted by 시간도깨비